2001년, 당시 골드만삭스의 경제학자 짐 오닐은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을 묶어 'BRIC'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합류하면서 오늘날의 BRICS가 탄생했다. 그는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 전망은 상당 부분 현실이 되었다.

그런 그가 최근 의미 있는 발언을 내놓았다.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오닐은 18개월 전만 해도 BRICS 국가들이 어떤 형태로든 대안적 금융 수단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환상'이라 여겼을 것이라며, 그러나 최근 결제 기술의 발전이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고 밝혔다. BRICS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이 국제 금융질서의 변화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오닐의 낙관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BRICS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은 대단히 강력하지만, 구체적인 성과 측면에서 보면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 설립이라는 명예로운 예외를 제외하고는 딱히 떠올릴 만한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즉, 그는 결제 시스템의 기술적 토대가 무르익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BRICS라는 정치적 연합체가 실제로 무언가를 이뤄냈다고 평가하는 데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 셈이다.
이 발언은 그가 최근 게마 첸거 덩과 함께 'BRICS+ Thinking'이라는 비영리 정책 플랫폼을 공동 설립한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 플랫폼은 서방과 BRICS+ 국가 간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연구를 위탁하고,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 국제보건, 인공지능 거버넌스 등 전 지구적 사안에 대한 정책 논의를 다루며 자체 지수와 성장 전망을 발표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오닐의 이번 발언은 단순한 논평이 아니라, 그가 직접 뛰어든 새로운 정책 활동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많은 사람은 탈달러화를 '달러의 몰락'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새로운 기축통화의 탄생이 아니라, 새로운 결제 시스템의 등장이다. 중국의 CIPS, 인도의 UPI, 브라질의 PIX, 그리고 BRICS Pay와 같은 디지털 결제망은 미국의 금융망을 거치지 않고도 국가 간 무역대금을 결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달러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달러를 반드시 거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구축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물론 달러는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국제통화의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국제무역 결제, 원자재 거래,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구성에서는 점차 다양한 통화와 결제 방식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디지털 금융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 금융의 중심이 단 하나였던 시대가 저물고, 여러 금융권이 함께 움직이는 다극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기회와 과제가 동시에 존재한다. 중국, 인도, 중동 등 신흥시장과의 직접 결제가 확대되면 환전 및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국내 디지털 금융 산업에도 새로운 성장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반면,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면서도 중국과 긴밀한 교역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은, 두 금융질서 사이에서 균형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된다.
이번 오닐의 발언은 달러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 아니고, 세계 경제가 단일 금융질서에서 다극 금융질서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로 읽어야 한다. 정작 오닐 자신도 BRICS라는 연합체가 신개발은행 외에 뚜렷한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인정한 만큼, 이 변화의 동력은 BRICS라는 정치적 틀 자체보다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구축해온 결제 기술의 축적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세계 경제의 미래는 '달러를 누가 대체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새로운 결제 질서를 주도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통화의 혁명보다 더 큰 변화, 즉 결제 시스템의 혁명이 시작되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